충북 보은에서 물에 빠졌다가 구조된 두 살배기 아기가 대형 대학병원 여러 곳에서 이송을 거부당한 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보건당국은 전공의 집단 사직 탓에 생긴 의료 공백과 연관이 있는지 조사에 나섰다. 의료계 안팎에선 무너져가는 열악한 지역의료의 현실을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B병원에서 심폐소생술과 약물 치료 등을 받던 도중 A양은 오후 6시7분께 맥박이 돌아왔다. 의식은 계속 없었다. B병원 의료진은 A양이 자발적순환회복(ROSC)에 들어섰다고 판단하고 추가 치료를 위해 119구급상환관리센터와 함께 대형 대학병원 이송을 시도했다. ROSC는 심폐소생술을 받은 심정지 환자의 심장이 다시 뛰면서 혈액이 도는 상태다.
충북, 충남, 대전, 세종, 경기에 있는 9개 의료기관에 보낼 수 있는지를 확인했으나 A양을 받을 수 있다고 답한 병원은 없었다. “치료 가능한 병상 등이 없다”는 이유였다. 그사이 A양은 오후 7시1분께 다시 심장이 멈췄고 39분 뒤 B병원에서 사망 판정을 받았다. 오후 7시29분께 대전의 한 대학병원에서 A양을 받을 수 있다고 회신했지만 생명을 살리기엔 역부족이었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의료공백 사태로 전원을 거부한 것은 아니다”며 “보은에서 40분 거리인 우리 병원으로 옮겨오면 오히려 환자 상태가 더 악화할 가능성 때문에 전원을 받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분석은 엇갈린다. 일각에선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불거진 의료 공백 탓에 응급 환자가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이날 응급의료포털 종합상황판에 따르면 사고 지역 인근에 있는 대전 충남대병원은 소아과 의료진이 없어 토·일요일 진료를 할 수 없다고 안내하고 있다. 이 병원은 전공의 집단 사직 이후 인력 상황에 맞춰 응급실 병상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대전성모병원도 휴일인 30일부터 소아청소년과 환자를 받을 수 없다고 안내했다.
충북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중환자 병상은 특성상 누군가 숨지거나 호전돼 이동해야 병상이 나온다”며 “지역 내에서 소아 중환자를 받을 수 있는 병상은 평소에도 많지 않았다”고 했다.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와 연결 짓는 데는 무리가 있다는 취지다. 이경원 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는 “상급종합병원으로 전원할 수 있는 환아 상태는 아니었던 것이 명확하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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